영준은 혜경을 사랑했을까? 영화 무뢰한을 보고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영화 후기 글입니다-!
지난 주말, 올레 무료 영화에 <무뢰한>이 있길래
아무 생각없이 시청했다가 끝까지 본 유원입니다 ^-^!
참.. 이 영화를 보고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나서
그냥 이런저런 제 생각을 한번 적어보려고 합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아직 영화를 안 보신 분은 뒤로가기 눌러주세요!
제가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영준(김남길)은 혜경(전도연)을 정말 사랑했을까? 입니다.
영화를 계속 보다보면 영준의 말과 행동은
진실인듯 아닌듯 정중한듯 무례한듯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알쏭달쏭
굉장히 헷갈리게 만듭니다.
영준은 가명이고, 가짜 직업입니다.
본명은 재곤, 형사이죠.
전도연 님이 연기한 김혜선도 마담 이름이고
본명은 혜선입니다.
즉, 둘 다 진짜 나와 가짜 나가 번갈아가면서 극중에 나옵니다.
영준이 처음 혜선과 마주했을 때는 굉장히 무례하죠.
자신의 무릎에 앉아보라고 하는 둥
처음부터 반말입니다.
하지만 범죄자의 애인(전도연)을 감시하면 할수록
점점 그녀에게 빠져듭니다.
영준은 츤데레의 정석입니다.
겉으로는 툴툴대고 틱틱대면서도
뒤로는 혜선을 챙겨줍니다.
혜선이 소중히 여기던 귀걸이를 팔았을 때,
그걸 다시 뒤에서 몰래 사서 혜선에게 주는 것도
혜선이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보다 다급하게 혜경을 찾는 것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혜경에게 티를 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혜경을 위해 해줬던 것들을
혜경이 알아봐주었을 때 오히려 못본 척 합니다.
예를 들어, 영준이 혜경의 집 앞에서 밤새 기다리고 있었을 때도
내심 반가웠을 거면서 겉으로는 쿨한척 하죠.
혜경이 먼저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기 전까지 말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또, 귀걸이도 “영준 씨 귀걸이 고마워.”
라고 했을 때도 못들은 척 대꾸도 하지 않고 집을 나가 버리죠.
그리고 혜경이 영준이 다시 찾아준 귀걸이를 하고 나왔을 때도
그 귀걸이를 착용한 걸 봤음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돌려 모르는 척 하죠.
후반부에서도 형사 재곤은 똘마니를 찾아가
혜선이 어딨냐고 끈질기게 추궁하고
결국 빛도 안 드는 곳에서 힘들게 일하는 혜선을
범죄자를 체포하면서 가까이 조우하게 됩니다.
그때도 보고싶었다는 말 대신
내 이름은 이영준이 아니라, 정재곤입니다.
라고 얘기하죠.
그렇게 찾아헤맸던 혜경인데 말이죠.
게다가 혜경의 근처에서 알짱거리면서도
정작 혜경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습니다.
영준은, 혜경과 같이 잡채를 먹는 장면에서도
정리하고 그 돈으로 우리 같이 살까?
라고 ‘반말로’ 던집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여러가지 감정선들을 복잡하게 느꼈는데요,
남자와 잠자리를 가진 후 더 친밀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여성의 모습이
혜선이 잡채를 만들어주는 장면에서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이 진심이었으면 좋겠다고 믿고 싶어하는 표정과 눈빛
그리고 영준이 나갈 때도 조금 더 같이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
영준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홧김에 잠자리를 가졌지만, 오히려 잠자리를 가지고 나서 미적지근하게 변한 태도
깊게 정서적으로 연결되고 싶어하지만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아하는 마음
더 같이 있고 싶지만 가까워지는 게 무서워 자리를 금세 뜨는 모습
영준은 전형적인 회피형 남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분석했을 때
저는 영준이 혜경을 사랑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 표현이 미숙했을 뿐..
오히려, 혜경을 돈으로만 본 박준길보다
영준은 혜경을 사랑했다고 생각합니다.
준길은 말로는 달콤하게 혜경을 설득하고 어르고 달랩니다.
하지만 행동과 목적은 오로지 ‘돈’입니다.
반면 영준은 말은 거칠지만 행동은 혜경을 위해줍니다.
어쩌면 이런 미숙한 표현방식 때문에 재곤은 이혼을 당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준의 애착유형은 아마도 공포회피 유형이 아닐까 싶어요.
회피형 중에서도 굉장히 모순적인 특징을 보이는 유형이 공포회피 유형입니다.
영준은 옥상에서 혜경을 속이며 통화를 하는 장면에서도
굉장히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는데요,
이 모습에서 저는 영준이 혜경을 사랑했기 때문에 보인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영준이 자신의 목적과 자신의 역할인 ‘경찰’로서의 역할을 다 했더라면
일말의 죄책감도 느낄 필요 없이 냉정하게 다음 플랜을 전화로 나눴을 테니까요.
영화 마지막에서 결국 영준은 혜경에게 칼을 맞습니다.
근처에 경찰 봉고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가라고 손짓을 하죠.
그리고 혜경이 재곤을 찔렀을 때,
이 모습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사랑하는 남녀가 껴안고 있는 듯한 연출이었습니다.
경찰 구급차가 가까이 오면 혜경이 곤란해지기에
영준은 경찰 구급차도 먼저 보내버리죠.
영준은 앞서 혜경에게
‘나한테 배신감 느낄 필요 없어. 나는 내 역할을 한 것일 뿐이고, 너는 범죄자의 애인일 뿐이야.’
라고 얘기했었어요.
이렇게 상처를 주는 말에 대한 댓가를 겸허히 받아들이듯,
재곤은 칼에 맞아서 정신이 희미해지면서도 비틀대며 상처에 저항하지 않습니다.
‘상처가 상처를 덮는다’
혜경이 재곤의 몸을 보면서 했던 말이에요.
즉 혜경이 재곤에게 남긴 이 상처도
결국 또 다른 상처로 덮여질 거지만
이 상처를 남겼기에 재곤은 혜경을 기억할 것입니다.
재곤은 영준이 아닌 재곤으로서도 혜경을 좋아했다고 생각합니다.
혜경을 그렇게 찾아다닌 것도 그렇고,
마지막 장면에서 ‘새해복 많이 받아라 씨ㅂㄴ아’라고 비아냥 거린 것도 그렇구요.
자신의 마음과 반대로 더 세게 부정하면서
그리고 못난 자기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화해서 말하면 ‘잘 먹고 잘 살아라.’겠죠.
그런데 이 말에는 애증이 느껴집니다.
너를 가지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고
그러기엔 나는 용기가 너무 부족했다.
그리고 우리 관계는 돌이킬 수 없다.
이런 복잡하고 오묘한 감정선이 느껴졌어요.
글을 쓰다보니 영준의 사랑은
공포회피 찌질남의 짝사랑 정도로 생각됩니다 ㅋㅋㅋㅋ
맞사랑은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결국 혜경은 박준길에게 돈을 주러 만나거든요.
만약 영준이 진심을 고백하고 혜경을 잡아줬더라면
또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차에서 돈만 주고 혜경을 붙잡지 않는 영준을 보면서
준길에게 가기로 결심하죠.
그 돈을 혜경이 그냥 먹튀했을 수도 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길에게 건네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혜경의 마음에는 준길이 크게 자리잡고 있기에,
영준의 짝사랑이 맞는 것 같습니다.
참 복잡미묘하네욧-!
전 나름 재밌게 봤습니다.
특히 김남길의 불안정한 눈빛 연기와 목소리가 압권이었습니다.
의도한 거인지는 모르겠지만
영준이 영업부장으로 연기할 때는 살짝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어요.
이 어색함마저도 연기한 거라면 김남길은 진짜 ㅠㅠㅠㅠㅠ
사실 제 짝남이 김남길을 닮았습니다
이젠 저도 더이상 안 좋아할 거지만..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보면서 더 기분이 복잡미묘해졌네요^-^;;
여자로서 사랑받고 예쁨받고 싶어하는 혜경은 불안 애착유형이라 생각해요.
회피형과 불안형이 만났을 때는 결국 파국인 것 같습니다^-^
배우 김남길 님과 전도연 님의 눈빛과 표정 연기가 너무 좋았어요.
자신의 속마음을 서로 숨기려고 노력하는 눈빛, 표정, 목소리, 떨림
이게 스크린으로 느껴져서 정말 좋았습니다.
그럼 또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